선거 결과를 다투는 쪽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소송을 내는 것이 아니라
증거를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. 투표지와 폐쇄회로 화면, 관리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
훼손되거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. 이때 쓰는 절차가 민사소송법의 증거보전입니다.
같은 선거,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 신청인데도 어떤 것은 받아들여지고 어떤 것은 물러났습니다.
요건과 관할, 투표지 보관 규정과의 관계, 그리고 실제로 무엇이 인용과 기각을 갈랐는지를
조문과 보도를 근거로 정리합니다.
정리일 2026년 8월 14일 · 모든 사실 주장에 출처 표기 · 제70편
이 글을 읽는 법. 확인된 사실(녹색)과 제기된 주장·쟁점(주황)을 구분합니다.
법 조문과 법원 결정, 언론에 보도된 사실관계는 사실로,
제도에 대한 평가와 개선 요구는 '누가 그렇게 말했는지'를 함께 적어 주장으로 표시했습니다.
이 글은 특정 사건의 결론이나 특정 정당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.
확인된 사실 — 법 조문·법원 결정·언론 보도제안·쟁점 — 학계·실무·정치권 주장
1. 증거보전이란 무엇인가 — 재판 전에 증거를 붙잡는 절차
재판에서 증거조사는 원칙적으로 소송이 시작되고 심리가 진행되는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.
그런데 그때까지 기다리면 증거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.
목격자가 위독하거나, 문서가 폐기 예정이거나, 현장의 상태가 곧 바뀌는 상황입니다.
이런 경우를 위해 마련된 것이 증거보전이며, 소송을 내기 전에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.
확인된 사실 — 요건과 관할
요건은 '보전의 필요성'이다. 민사소송법 제375조는 미리 증거조사를 하지 않으면
장래에 그 증거를 사용하기가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사정이 있을 때 증거보전을 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.
증인의 사망이 임박했거나 문서가 멸실될 우려가 있는 경우, 건물의 현상이 변경되는 경우가
전형적인 예로 설명됩니다.[1]
관할은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. 소를 제기하기 전에는 증거방법이 있는 곳을 관할하는 지방법원에,
소를 제기한 뒤에는 그 증거를 사용할 심급의 법원에 신청합니다.
급박한 사정이 있으면 소 제기 후에도 증거방법 소재지 지방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.[1]
신청은 서면으로 하고 필요성을 소명해야 한다. 민사소송법 제377조에 따라 서면 신청이 원칙이며,
보전의 필요성에 관한 소명이 요구됩니다.[1]
불복 가능성은 방향에 따라 다르다. 신청을 기각한 결정에 대해서는 항고할 수 있지만,
증거보전을 받아들인 결정에 대해서는 불복할 수 없습니다.[1]
중요한 것은 증거보전이 승패를 가르는 절차가 아니라는 점입니다.
법원이 증거보전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신청인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고,
기각했다고 해서 주장이 틀렸다고 본 것도 아닙니다.
판단 대상은 오로지 "지금 확보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쓸 수 없게 되는가"입니다.
2. 선거 사건에서는 어디에 놓이는가
선거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은 제67편에서 정리한 대로 선거소송과 당선소송으로 나뉘고,
제소 기간이 짧게 설계돼 있습니다. 반면 소송에서 다투게 될 자료 — 투표지, 투표록, 개표록,
투표소 폐쇄회로 화면 — 는 선거관리기관이 보관합니다.
그래서 다투려는 쪽은 소송 준비와 동시에 자료 확보 문제를 함께 마주하게 됩니다.
확인된 사실 — 투표지는 얼마나 보관되나
보관 기간은 당선인의 임기 중. 개표가 끝난 투표지와 잔여 투표용지는 구·시·군선거관리위원회가
안전한 장소로 옮겨 해당 선거 당선인의 임기 중 보관합니다.
선거쟁송이 제기되지 않았거나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할 수 있고,
폐기는 전문 파쇄업체를 통해 폐기각서를 받은 뒤 처리하는 것으로 안내되어 있습니다.[2]
근거 조문. 투표지·개표록·선거록 등의 보관은 공직선거법 제186조가 정하고 있습니다.[3]
이 규정이 증거보전 판단에 직접 영향을 준다. 법이 이미 보관을 명하고 있다면
"지금 확보하지 않으면 사라진다"는 필요성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.
실제 결정에서 이 논리가 그대로 쓰였습니다(3항).[4]
3. 갈린 결론 — 2026년 잠실 사례에서 인용된 것과 기각된 것
2026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서울 송파·강남 등 일부 투표소에서
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, 이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증거보전 신청이 이어졌습니다.
같은 지역·같은 선거인데 결과는 갈렸습니다.
확인된 사실 — ① 일부 인용된 신청 (2026년 6월 9일)
법원과 결정.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51단독 김지연 부장판사는 2026년 6월 9일
증거보전 신청을 일부 인용했습니다. 신청인은 6·3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였던
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입니다.[5][6]
보전 대상. "인쇄매수 1,900매"로 표기된 투표용지 보관상자와
6월 3일 오전 8시부터 5일 오후 9시까지 촬영된 폐쇄회로 화면 등 4건이 대상이 됐습니다.[5][6]
제외된 부분.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로 옮겨진 투표지와 투표함에 대한 부분은
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.[5]
검증 절차. 6월 10일 오후 3시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현장 검증이 이루어졌고,
대상물은 봉인돼 법원으로 옮겨졌습니다. 이 투표소는 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으로
운영 시간이 연장됐던 곳입니다.[5][6][7]
신청 이유. 신청인 측은 투표지와 기록, 선거관리기관 내부 통신 자료 등이
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필요성의 근거로 들었습니다.[6]
확인된 사실 — ② 기각된 신청 (2026년 6월 23일)
법원과 결정.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민사부는 2026년 6월 23일,
잠실 개표소의 투표지·투표함·투표록·개표록 등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.
신청 주체는 정당 자유와혁신으로, 송파구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방으로 했습니다.[4]
기각 이유. 법원은 공직선거법과 공직선거관리규칙상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지·투표함 등
선거 관련 서류를 당선인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을 들어,
증거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.[4]
두 결정을 나란히 놓으면 기준이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납니다.
법이 보관을 보장하지 않는 자료 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덮어써지는 폐쇄회로 화면,
개별 투표소에 남아 있던 보관상자와 그 표기 — 는 지금 확보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으므로
필요성이 인정됐습니다. 반대로 법이 임기 내내 보관을 명하고 있는 자료는
그 자체로 멸실 위험이 낮다고 보아 필요성이 부정됐습니다.
증거보전이 "자료를 열어 보는 절차"가 아니라 "사라질 자료를 붙잡는 절차"라는 성격이
결론을 가른 셈입니다.
4. 법원 검증과는 어떻게 다른가
확인된 사실 — 세 절차의 자리
증거보전. 소송 전이나 소송 중에 증거를 확보·보전하는 절차입니다.
표를 다시 세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, 대상물을 봉인해 법원이 관리 상태로 옮기는 데까지가 기본입니다.[1][5]
선거소송에서의 검증. 선거의 효력을 다투는 본안 소송에서 법원이 투표지를 다시 확인하는 절차는
소송 안에서 이루어지는 증거조사입니다. 44표 차로 결과가 갈린 통영시장 선거의 사례처럼
소청·소송 절차를 통해 진행됩니다.[8]
국정조사에 따른 확인. 국회 차원의 조사 절차에서 여야 합의로 이루어지는 확인은
소송 절차가 아닙니다. 여야는 2026년 7월 30일 잠실 개표소 투표지 약 247만 장에 대한 확인을
8월 18일 실시하기로 잠정 합의했습니다.[9][10]
같은 자료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누가·어떤 근거로·무엇을 확인하려는가가 다르면
절차의 이름과 효력이 달라집니다. 이 구분이 흐려지면
"법원이 이미 확인했다"거나 "확인이 거부됐다"는 식의 서로 다른 절차를 뒤섞은 설명이 나오기 쉽습니다.
제기된 주장 — 절차를 둘러싼 평가
"보관 규정이 있으니 충분하다"는 입장. 법이 임기 중 보관을 명하고 있는 이상
별도의 보전 없이도 자료는 유지되며, 광범위한 보전 신청은 선거 결과를 흔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
견해가 있습니다. 위 6월 23일 결정의 논리도 필요성 부정에 무게를 둔 것입니다.[4]
"보관과 검증은 다르다"는 입장. 반대로 신청인 측은 보관이 이루어지더라도
보관 상태와 봉인 자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면 사후 검증이 무의미해진다고 주장해 왔습니다.[6]
어느 쪽이 옳은지는 이 글이 결론 낼 문제가 아닙니다. 다만 현행 제도에서
판단 기준이 '보전의 필요성' 하나로 수렴한다는 점은 두 결정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됩니다.[1][4]
5. 정리 — 네 문장으로
확인된 사실 — 핵심 요약
요건. 증거보전은 미리 조사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그 증거를 쓰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
인정됩니다(민사소송법 제375조).[1]
관할. 소 제기 전에는 증거가 있는 곳의 지방법원, 소 제기 후에는 그 증거를 쓸 심급의 법원에
서면으로 신청하고 필요성을 소명합니다.[1]
보관 규정이 변수다. 투표지 등은 당선인의 임기 중 보관되도록 되어 있어,
그 범위 안의 자료는 멸실 위험이 낮다고 보아 필요성이 부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.[2][4]
실제 결론은 자료의 성격에 따라 갈렸다. 2026년 6월 잠실 사례에서
보관상자·폐쇄회로 화면 등 4건은 인용됐고, 개표소로 옮겨진 투표지·투표함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.[4][5]
증거보전은 결과를 정하는 절차가 아니라, 결과를 다툴 재료가 남아 있게 하는 절차입니다.
그래서 이 단계의 결정은 승패의 신호로 읽히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.
어떤 자료가 어떤 근거로 얼마나 오래 남는지를 아는 것이,
이후에 벌어지는 확인 절차들을 오해 없이 따라가는 출발점입니다.